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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가스파르' 뿐만 아니라 라벨의 피아노 곡 중 또 하나의 중요한 곡인 피아노 협주곡에 있어서도 미켈란젤리의 음반은
최고의 평가를 받는다. 특히 2악장에서 표현하는 이 곡 트유의 아름다움은 미켈란젤리를 따라갈 자가 없다는 평이다.
그의 럭비공같이 튀는 삶에 대하여.......
그는 과연 일상생활에서 그냥 살고 있는 천재였엇는가 아니면 음악적인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자신만의 장벽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는가...?
그것은 보는 사람들에따라 다르게 보이겠지만 아마도 모두가 공감하는 것은 그는 음악에 한하여는 장벽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일 것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삶을 말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는 말하는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말하려는 것은 그가 연주하는 것에 있다. 그가 연주하는 음 하나하나가 바로 그가 말하려는 것이다.
그의 튀었던 경력.......
피아니스트이면서도, 오르가니스트였고,항공기 파일럿에다가 카레이서였다. 그의 경력에서는 밀레 밀리아라는 자동차 경주에서 우승한 경력도 있다고 한다. 스키의 명수였으며 의사이기도 하였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그는 의술에 심취한 적이 있었다.) 한때는 알프스의 산사나이들을 모아서 합창단을 조직하기도 하였다.
그가 공연 연주가들에게 불리는 말은 '일급 요주의 인물' 이라는 것이었다. 공연 직전이나 레코딩 중간에 취소시켜 버린 일이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연 취소 이유는 여러가지 이다. 건강상의 문제이서부터 악기문제, 조율문제, 홀의 음향문제, 그리고 청중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이다.
연주회 당일에는 하루종일 극장안을 왔다갔다 하면서 , 스타인웨이 피아노의 소리를 점검 하였으며, 음이 완전히 조울되었다고 느껴지기 전까지는 기다려야 했다. 베를린 연주회에서는 이 기다림을 두 시간 동안이나 끈 적도 있었다. 그나마도 연주가 제대로 이루어지면 다행인 것이었다. 파리에서는 손이 시렵다고 연주를 거부했고, 브레겐츠에서는 청중이 세 번이나 기침을 했다는 이유로 앙코르를 거부했다. 취리히에서는 에어콘이 켜져있다는 이유로 연주를 거부했다.
이로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를 비난했지만 그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위하여 연주를 하지 않는다. 오직 나와 작곡가를 위해서 할 뿐이다. 그 자리에 청중이 있건 없건 상관 없다."
교육도 제멋대로 였다. 어떤 날은 블과 10 분, 어떤 날은 4 시간을 끌기도 했다. 엄청난 고액의 수업료를 요구하기도 하였고 마음에 들면, 특히 어린아이들에게나 가난한 사람들은 몇 년을 무료로 가르치기도 하였다.
미켈란젤리가 갇는 위험의 이유에 대하여 많은 평론가들은 그의 성격을 거론한다. 즉 , 미켈란젤리는 오늘날에는 거의 드문 이상주의자이며 완벽주의자라는 것이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성에 차지 않거나 자기 뜻이 아닌 ;불순물' 이 섞인다면 결코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타협하려면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것이 낫다. 음악은 그만큼 엄격한 것이다." 이것이 그의 음악에 대한 지론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로 인해 그는 사람들과 잘 사귀지 못하였다. 줄리니 마저도 미켈란젤리를 마리아 칼라스와 함꼐 예술과 삶 사이에 장벽이 있었던 두 사람의 예술라고 꼽은 바 있다. 그는 대두분 검은 옷을 입고 다녔다. 그 검은 옷 사이로 날카로운 눈빛과 창백한 얼굴이 드러났다. 연주할 때 외에는 대중에게 나서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그랬기에 그의 삶은 매일이 가려 있었지만, 그럴수록 그의 매력은 자꾸만 커져갔다.
그에대한 음악에 대한 평은 '피아노를 들고 다닌 피아니스트' 라는 것이엇다. 자신의 마음에 흡족하지 않은 연주는 용납하지 못하였따. 그래서 그런 것일까...? 환갑이 넘은 뒤인 80년대부터는 아예 자기 자기 마음에 맞는 음색의 피아노를 지참하고 연주여행을 다녔다.
20세기의 명 피아니스트로 불리는 그는 명성에 비하면 남긴 음반의 수는 적은 편이다. 음반계에서는 연주뿐만 아니라 녹음에도 까다로왔던 미켈란젤리 특유의 '완벽주의'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미켈란젤리의 연주는 '맑은 물의 흐름처럼 투명하고 막힘이 없다.'는 평을 얻는다. 음 하나하나를 높치지 않는 정확하고 가벼운 터치, 피아니시모부터 포르티시모까지의 음색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감정의 과잉이 없는 절제, 그러면서도 규격화 되지 않고 작곡가가 의도하였던 선율의아름다움을 충분히 노래하는 능력이 탁월하였다. 투명한 음색만큼이나 미켈란젤리의 음악활동도 지극히 절제되엇다.
미켈란젤리는 명성을 얻은 음악가들이 흔히 1 년에 100 회 이상의 연주회를 하는 것과는 달리 그는 연주회 횟수를 1년에 40 회로 제한했다. 그의 음악의 생명력은 이런 절제에서 나오는 감정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약간은 뜬 구름같은 이상적인 사고를 하는연주 그리고 눅눅한 고뇌보다는 맑은 연주를 추구하는 것이 그의 음악 철학의 기조를 이루고 있어서인지 깊은 격정을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역시 아쉬운 점으로 남는 것이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3편으로 겨우 나눠서 이 졸타를 읽어 주신분들에게 권하는 음반입니다.....
포니트 세트라 :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 1 2 집.......
도이치 그라모폰 : 쇼팽 리사이틀 앨범 , 드뷔시의 프렐류드 1 2 집
드뷔시 영상 1 2 집 과 어린이의 차지
피아노 라이브러리 : 젊은 미켈란젤의 연주를 녹음하였던 것입니다. (이 앨범은 20 세기 초반에 연주하였던 그의 연주색을 감상 할 수 있는 기회와 그가 바로크 음악에서부터 기조하였다는 사실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이 앨범에는 바로크를 주로 하고 낭만파 곡이 소수 잇는 음반입니다. )
참 자료를 읽다보니 미켈란젤리가 연주한 스카를라티 음반도 있더군요...
그리고 음반시장에서 둘러본 바로는 라흐마니노프의 곡을 연주한 미켈란젤리도 있구요.
참 지난번에 들어보니 도이치에서 황제 음반도 있다고 하더군요........
제가 개인적으로는 미켈란젤리를 지성적인 미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젊은 시절의 사진을 보면 완전히 뒤로 넘긴 앞머리에다가 콧수염 그리고 날카로운 눈에다가 단정한 머리 까지 아주 냉정하고 지적인 신사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나이를 먹으니 아주 히스테리컬한 할아버지도 변하는군요......--
여담이었습니다. 그러면 전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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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단디24]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3
올린이 : fredsak (오종철 ) 97/08/31 11:02 읽음 : 22 관련자료 없음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D.537 에서는 앞에서도 언급하였던 화음변화의 단절과 다이내미즘의 절제의 문제점들이 나타나곤 한다. 그의 해석은 빌헬름 켐프에 못지 않게 아름답고 순수한 전원을 그려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의 전원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아름답되 건조한 전원, 인간과 사귀지못한 미켈란젤리의 특징이 음악에 투영되는 것 같다.
미켈란젤리가 연주하는 쇼팽의 음반에서도 이러한 문제점은 약간씩은 나타난다. 쇼팽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성격은 부각시키지만 내재되어 있는 쇼팽의 정열이나 아픈 정서의 흔들림은 잘 나타내지 못한다. 쇼팽에 대하여 경건한 느낌이 들 정도이기도 한다.
그가 쇼팽을 연주하는 과정에서 중시하는 과정은 음에대한 철학일 것이다. 이런 과정은 비단 다른 작곡가의 곡을 연주하는 과정에서도 중시하겠지만 쇼팽의 곡에서는 두드러진다. 곡이 본래 의도하는 것에는 크게는 충실하지는 않지만 그가 살리는 쇼팽은 약간은 다른면모 - 사실적이고 안정되어있는 면 - 를 나타낸다.
그렇지만 미켈란젤리가 연주하는 발라드 제 1 번에서는 이런 면과는 약간 다른 연주색을 들려준다. 이 곡에서는 감정의 차이가 극명한 면이 드러나면서 음 개개의 색이 크게 드러난다. 그는 쇼팽을 연주하면서 곡의 성격을 바꾸어 놓는 경우가 있다. 그가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연주하였던 이별의 왈츠를 들어보면 이런 면을 알 수 있다. 이별의 왈츠의 성격은 쇼팽 자신이 이별에 대하여 역설적으로 나타내려고 하는 곡이라고한다.
미켈란젤리의 이 왈츠는 왠지 모르게 기쁜면이 드러난다. 우중충하게 애수적인 면도 드러나기는 하지만 전반적인 곡 분위기를 기쁘게 이끌어 가고 있다. 이런 면에서는 그의 어쩔줄 모르면서 사는 생활이 드러나고는 한다. 전번적으로 드러나는 쇼팽연주색은 자유분방성을 중시하되 속도 면에서는 왜 인지 둔하다는 느낌을 주기까지 한다.
낭만주의 영역에서 쇼팽의 연주 색이 분분한 느낌을 준다면 슈만에 대한 해석은 상당히 좋은 평을 받는다고 한다. 빠른 속도 설정과 강한 표현으로 피아니시모와 메조 포르테를 오가는 축제를 벌이는 연주를 하게 된다. '팡파레' 지의 레이몬드 터틀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난 미켈란젤리 숭배자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연주가 훌륭하다는 것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가 가진 절제와 자유의 그 좁은 틈을 노니는 견고함과 친절함을 아울러 가지고 있는 연주자다."
리스트의 음악에서는 왠지 모르게 순수한 테크닉이 아닌 과학적인 탐구를 적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완벽한 비르투오시티와 장인 정신으로 음을 세공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리스트 음악의 특징은 넓은 스케일과 불규칙적인 리듬 , 분절된 악절, 현란한 중음 트릴과 아르페지오등인데.....
미켈란젤리에게 있어서 이런 것들을 처리하는 능력은 확실하다. 미켈란젤리의 명반 중에서는 또 꼽을 것이 있다면 드뷔시의 피아노곡 앨범일 것이다. 프렐류드 1,2 집은 1978년과 1988년 10년의 사이를 두고 제작되엇다고 하는데 여기서 그의 완벽주의를 읽을 수 있다.
이런 긴 세월이 걸린 만큼 실제로 음 하나하나가 철저히 연마되어 있으며 신비의 경지에 도달해 있다. 그리고 점묘적인 묘사는 음과 여백사이에 감추어진 신비를 차분하게 드러낸다. '어린이 차지' 에서는 페달터치가 놀랍게 드러난다. 전주곡에서 드러나는 그의 연주색은 괴팍한 면모를 드러낸다. 연주가 기분대로 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상주의 음악에 대한 다양한 변신을 그러내는 것 같기도 하다.
항상 그의 표정에서는 무엇인가에 대한 불만을 읽을 수 잇는데 음 하나하나에서는 항상 기꺼이 연주를 하는 모습이 연주속에 들어있다. 평론가들은 이렇게 말을 하고 있다. 바로크에서 시작한 그의 음악색은 이제 인상주의까지 발을 들여 놓았고 한 획까지 그은 연주를 하였다.
화려한 음색은 아니지만 통일된 음조 속에서 미묘한 조화나 뉘앙스를 추구하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피아니시모는 다른 예술가들보다는 최소한 세 배나 구분되어 들린다. 아티큘레이션에서도 구별된다. 평론가들은 이 미켈란젤리는 현존하는 피아니스트중에서 가장 완벽에 가까우며 독창적인 피아니스트라고 한다.
그렇지만 그에게 있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피아노의 투명성과 정확성에서는 앞섰지만 왠지 모르게 탄식하거나 열광하는 인간미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인간이 아니라 하늘을 쳐다보고 산 수도승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것 같다.
미켈란젤리를 바라보는 눈은 그에게서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서 상당히 다르다. 이런 사례는 미켈란젤리가 누구인지를 말하는 것을 밝히는 자료가 될 것이다. 마르타 아르헤리치는 미켈란젤리의 제자라고 한다. 그녀가 일본을 방문하였을 때 그녀는 미켈란젤리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음악에 대하여는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맛있는 스파케티를 위한 국수 삶는 법, 산책하는 방법, 그의 문학과 역사에 관한 것 등이 음악레슨의 전부였다."
그렇지만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는 이렇게 말한다. "연주생활 중에 그와 함꼐 식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의 화제는 항상 예술에만 머물러 있엇다... 그의 삶은 교요햇지만 그의 예술은 마술과도 같았다."
이런 상반된 평가는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미켈란젤리 자신에게서만 나온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한 구분이 너무나 명확햇다. 나중에 그는 자신이 아르헤리치를 별로 신통찮은 연주가라고 말한 바 있다.
미켈란젤리는 참으로 기구한 삶을 살았다. 자신이 처해잇는 운명이 전혀 음악과는 무관하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의 삶은 음악과 소원하여 있을 경우에도 항상 음악이었다. 그리고 외로운 생활을 하였지만 왠지는 모르게 그에게는 날카로움이 있었다. 예술에 대한 그의 생각은 상당히 심도 있엇지만 사람들을 대하는 점에서는 기분내키는 정도라고 하였는데........
그의 생활을 살펴보면 그의 음악 철학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3 번째 글에서는 그의 생활과 연관된 음악 철학과 그의 연주가 수록된 음반에 대하여 쓸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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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제목 : [단디24]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2
올린이 : fredsak (오종철 ) 97/08/25 11:17
출처 : 출처 : http://cafe.naver.com/gosnc/
나에게 피아노를 선사해준 그는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이다.
KBS클래식 채녈에서 그의 갈루피 소나타를 듣는 순간 피아노가 가진 최고의 매력을 알아버렸다.
마치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처럼 맺혀있는 이슬의 영롱함 그 영롱한 음색이 그의 손끝을 거치자 조심스런 슬픔이 되어 나의 마음속으로 뚜벅뚜벅 걸어들어와 내 맘을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미켈란젤리의 피아노는 너무나 아름다워 감히 다가갈 수 없는 여인의 도도함을 닮았다.
선율속에 조화롭게 녹아내리지 않고 한 음 한 음 튕겨져나와 화사하게 반짝이며 멜로디를 다시 그려낸다.
협주곡 속에서도 그의 피아노는 도드라진다. 오케스트라에 융합되어 이끌리지 않고 오케스트라와 경쟁하듯 밀고 당기는 팽팽한 긴장감이 박진감 넘치는 전개를 만들어낸다.
꼬장꼬장함에 늘 완벽함을 추구하는 그의 쉽지 않은 성격이 그가 마주하는 피아노에서 그대로 투영되어 나온다.
어둠이 삼켜버린 세상속에서 홀로 차가운 빛을 품어내며 자신이 비추고 싶은 곳에만 빛을 내어주는 달과 같이 그는 그의 피아노 속에서 홀로 외로이 그리고 당당하게 빛나고 있다.
- 고클래식 zerosumy 께서 쓴 글
피아노는 커다란 덩치에 비해 워낙 섬세한 악기인지라 진동이며 기온 변화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는 것 이상으로 손상되기 쉽다. 따라서 피아노를 가지고 다니는 피아니스트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하지만, 20세기에는 피아노를 직접 공수해가지고 다닌 거장들도 간혹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이 있다면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와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를 들 수 있다. 이들은 고유한 음색으로도 유명한 피아니스트들이다. 하지만 그 음색이란 것이 아무 피아노에서나 살아날 수는 없었다. 음량을 인위적으로 다듬고 조율한 그들만의 피아노와 또 그를 따라다닌 전속 조율사의 덕이 크다.
워낙 까다로운 결벽주의자로 유명한 미켈란젤리는 한 가지라도 불만족스러운 조건이 있다면 공연을 취소했다. 날씨, 음향, 그리고 자신의 건강상태가 모두 갖춰져야 무대에 들어섰으며 무엇보다 자신과 함께 여행온 피아노의 컨디션이 가장 중요했다.
한번은 일본에 공연을 갔을 때 피아노의 상태가 아주 좋지 않았다. 당연히 미켈란젤리는 공연을 취소했다. 유럽이었다면 미켈란젤리의 이런 튀는 행동이 결코 놀랍지 않았겠지만 일본은 매우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들은 미켈란젤리의 여권을 압류하고 엄청난 위약금을 부과하며 감정적으로 대응했다. 미켈란젤리는 이후 다시는 일본을 방문하지 않았다.
연주회만큼이나 그는 레코딩에서도 까다로운 성격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의 레코딩이 숫적으로 적은 이유는 온전한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에만 비로소 마이크 앞에 앉았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 음반 때문에 미켈란젤리는 조국 이탈리아를 등지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1968년 미켈란젤리의 전속 음반사였던 비디엠(BDM)사가 파산하자 이탈리아 당국은 그의 피아노 두 대를 압류했다. 조국을 위해 피아니스트라는 신분을 불사하고 총까지 들고 참전했던 그는 대단히 격노해 결국 스위스로 망명했고, 그 뒤 다시는 조국의 땅을 밟지 않았다. 심지어는 주최 쪽이 이탈리아인에게 티켓을 팔았다는 이유로 런던 콘서트를 취소할 만큼 그의 분노는 대단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이탈리아령이 아닌 바티칸에서는 꾸준히 콘서트를 열며 애정을 표시했다. 당시 교황이었던 요한 23세는 미켈란젤리의 동향 친구였으며 수도원에서 함께 생활한 적이 있는 각별한 사이였다.
1960년 4월28일 저녁에도 그는 바티칸 베네딕트 홀에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연주하고 있었다. 2악장이 끝나갈 무렵 갑자기 밤하늘에 번개가 번쩍였다. 점점 잦아드는 피아노 소리 위로 그 다음에는 천둥소리가 내려앉았다. 마침 천둥이 내려친 시기는 이 마에스트로가 경쾌한 3악장을 시작하기 직전이었다.
자연이 선사한 시기적절한 애들립에 잔뜩 고무된 미켈란젤리는 충만한 영감으로 이날 공연을 훌륭하게 마무리했다. 이 연주실황은 아무런 편집없이 있는 그대로 녹음되어 1991년 미켈란젤리의 승인 아래 히스토리컬 레코딩으로 발매되었다. 물론 그 장엄한 천둥소리도 함께.
출처 :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104152.html
- 글쓴이 : 송진명 (다음카페 옛거장을 기리며...) 01/02 27
미켈란젤리의 녹음들 미켈란젤리는 녹음을 싫어하기로 유명합니다. 따라서 동년배의 연주자들인 리히터나 제르킨, 아라우등에 비해 현저히 적은 녹음을 남기고 있습니다. 레퍼토리 또한 베토벤, 드뷔시, 슈만, 쇼팽, 슈베르트정도로 극히 제한되어있습니다. 일단 제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미켈란젤리의 CD는 다음과 같습니다.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4번 + 피아노 협주곡 1번 (줄리니/ 빈 심포니)
-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줄리니/ 빈 심포니)
- 브람스 발라드 Op.10 +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D.537
- 쇼팽 마주르카 10곡 + 전주곡 Op.45 + 발라드 Op.23 + 스케르초 Op.3
- 드뷔시 영상 1,2집 + 어린이 코너 - 드뷔시 전주곡 1집 - 드뷔시 전주곡 2집
- 하이든 피아노 협주곡 4번, 11번 에드몽 드 쉬투츠/ 취리히 실내관현악단
-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15번,바흐-부조니 샤콘느,브람스 "파가니니주제에 의한 변주곡 " 그라시스/Pomeriggi Musicali오케스트라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4번 + 라벨 피아노 협주곡 G장조 그라시스/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 바흐-부조니, 스카를라티, 베토벤, 브람스, 그리그, 그나라도스 등...
- 바티칸 실황 녹음 (4CD) : 베토벤 "황제", 드뷔시 "영상", 라벨 "밤의 가스파르", 쇼팽 "그랜드 폴로네이즈", 리스트 "죽음의 춤", 슈만 피아노 협주곡
- 미켈란젤리를 기억하며 (2CD) : 베토벤 "황제" (첼리비다케/파리 관현악단), 쇼팽 피아노 소나타 2번 "장송", 바흐-부조니 샤콘느, 슈만 카니발, 쇼팽 환상곡 f단조
물론 제가 들어본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설명을 해드리자면... DG 레이블로 출시된 줄리니와의 베토벤의 협주곡녹음은 많은 분들께서 가지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개인적인 얘기이지만, 초등학교, 중학교시절 폴리니/뵘의 연주과 무수히 비교하며 듣던 녹음입니다. 폴리니의 경우, 뵘의 관현악반주에 중점을 두고 감상하였다면, 미켈란젤리의 경우, 그 영롱한 연주에 마음을 빼았겼던 기억이 납니다. 1977년,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와 함께 드뷔시의 영상과 어린이 코너는 오랜침묵후인 1971년 내놓은녹음으로, 상당수의 분들께서는 이 곡의 절대적인 명연으로 생각하실 겁니다. 찬연하면서도 예리한 타건, 유연한 변화 등 피아노의 표현을 극대화한 훌륭한 연주입니다. 전주곡집은 들어보질 못했기 때문에 뭐라 말씀드릴수는 없지만, 기제킹의 녹음(EMI)과 더불어 가장 훌륭한 연주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라흐마니노프와 라벨의 협주곡은 구하기 다소 어렵지만, 듣는 이들에게 크나큰 기쁨을 주는 연주입니다. 스위스 메모리아 레이블의 바티칸 실황녹음은 60년, 62년, 77년, 87년의 역사적 연주를 담은 4장짜리 CD로 독일 비평가 협회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습니다. 특히 황제 3악장의 마지막 11마디에서 팀파니의 연타위로 피아노의 E flat 화음이 아다지오로 들어서는 순간 천둥의 엄청난 굉음의 울림이 자연적인 앙상블을 빚어낸, 그야말로 전설적인 명연이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CD는 Music & Arts에서 발매된 2-For-1녹음입니다. 잠시 CD가이드의 평을 빌리자면, "끝나지 않은 것처럼 이어지는 흐름에 강약완급을 적절히 배합해 곡의 마디를 만들어가는 환상적연주..."라고 되어있습니다. 황제의 경우는 음질이 아주좋을뿐더러, 첼리비다케의 생동감 넘치는 반주와, 파리 관현악단의 뛰어난 목관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선곡또한 아주 좋으므로 꼭 선택하시길 바랍니다.
미켈란젤리의 이름에는 '축복' (Benedict)과 '천사 미카엘' (Michelangelo)이 이름속에 포함되어있다.
이름처럼 그의 음악세계도 종교의 엄숙함과 많이 닮아있다.
철저한 악보분석, 악보에 근거한 만큼의 낭만주의, 조금의 흐트러짐이 없는 기교.
미켈란젤리는 한세대를 풍미했던 거장의 시대에서도 유달리 돋보이는 존재였다.
그는 항상 완벽으로 통했다.
그의 음반이 대부분 라이브 녹음임에도 음질을 제외하면
언제나 최고의 연주를 들려주는 미켈란젤리였다.
하지만 그에 대한 인식이나, 정보는 미비하기 그지없다.
그것은 그의 삶이 칩거와 은둔으로 가득찬 삶이였기때문이였을까...
조국 이탈리아를 떠나 스위스 루가노에 정착하여 평생을 살았던 그는
그가 사랑했던 스위스의 산들처럼 언제나 자신만의 길을 걷는 타협의 여지는 전혀없는 피아니스트였다.
언제나 자신만의 길을 고집하고, 그 길만을 묵묵히 걸었던 미켈란젤리였다.
누가 그랬던가 ! 천재는 고독하다고...
그렇게 그는 험난한 고독의 길을 혼자서 걸어간 위대한 예술가였다.
- 2002.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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